4216.   4282 
어떤 취재
추천 : 154 이름 : 安逸 작성일 : 2007-03-23 01:42:35 조회수 : 966
http://blog.khan.co.kr/97dajak
나는 언제부턴가 매우 도도한 습관을 갖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동시를 쓰다가 전공을 공대에서 국문과로 바꾸고,

그것도 모자라 철학을 곁다리로 걸치고

한학자 선생님에게 사서까지 배웠다.

그래서 그런지 도도한 습관이 몸에 배었다.

사실 나는 한 신문사의 취재원이기도 하며,

모 신문사에서는 연재도 두 달간 해본 경험이 있어

언론과는 익숙하다.

취재원의 자격으로 기자에게 술을 얻어먹는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기자와의 커다란 간극을 경험했다.

사실 내가 서민인데, 기자들이 더 서민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만난 기자들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팩트 언저리에서 반짝이다가 어느 정도 인식의 수준까지 가면

급격히 회귀한다. 혹은 의무적으로 회귀한다.

나는 그 자리에 홀로 남아 고민하다가

떨어진 '팩트'를 가지고 내 길을 간다.

이를테면 기자가 떨구고 간 '팩트'가 나의 출발점인 것이다.

나도 슬슬 취재를 시작했다.

원래 오늘 언론노조 사무실에 간 목적은 '인터뷰'였지만,

정식으로 하려면 몇 가지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서,

아는 동생에게 사람들을 좀 보여준다는 의미로 갈음했다.

나의 '취재'는 좀 다르다.

작가가 작품을 쓰기 위한 '취재'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을 잡고, 인물을 설정하고, 에피소드와 상황을 수집한다.

'취재'는 이러한 '기획'의 바탕 위에 있기는 하지만,

기획과는 전혀 동떨어진 정보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혹 이런 정보들이 작품의 퀄리티를 결정적으로 끌어올리기도 한다.

작품에 소요되는 취재와 소스는 작가에게 귀속되지 않고,

주인공들에게 귀속된다.

주인공들은 주인공들의 주인인 나에게 '강력하게' 자신의 인생을 편집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한다.

나는 그 주인공들을 만든 사람이지만, 주인공들은 작품이 발표되는 시점으로부터가 아니라,

주인공의 마음에 조그마한 동요가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작가의 소유가 아닌 것이다.

그것이 그때까지도 작가의 소유가 된다면

작품은 리얼리티를 대부분 잃게 된다.

몇몇 인물들의 이름을 지어봤는데,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폐기해야 할 이름들이다.

'이건달, 이학질, 이금창'

첫 번째 이름을 제외하고는 다 병의 이름이다.

특히 금창은 매우 무서운 병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공포감 때문에 그분의 이름을 한동안 '-장-'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좀더 세련된 무엇이 없을까. 선과 악의 극명한 대립은 너무 뻔하고 재미없지 않은가.

그래서 청년 여기자(청년 여기자는 청장년 여기자보다 좀 젊은 사람임. 청년은 사실 남자의 전유물은 아니다)와 젊은 독자의 사랑 에피소드를 첨가할까 하다가,

아래 글을 보자마자 그 생각은 무효화되고 말았다.

은남이는 장부다. 은남이의 예전 직장 상사가 나한테 했던 말이다. "여장부도 아니야, 그냥 장부야, 장부 <성우제 기자의 기자열전 中>

내가 너무 안일했다.

그래서 삼성이 썼던 전략을 벤치마킹하기로 했다. 그 전략 참 호환성도 좋다.

이름하야 '물타기 전략'이다.

그러니까 중대한 것을 중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소하게 만드는 가공할 만한 전략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사건을 '매우 사소한 사건'으로 그리기로 했다.

'사소한'이 가지고 있는 역설과 폭발력에 올인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실제로 시사모 사이트를 만들어낸 이 사건은 '매우 사소한 사건'이다.

그러니까 왠만한 '중대한 사건'보다 더 중대한 '사소한 사건'이다.

이게 역설을 배우면 중독성이 강하다.

아니다, 역설이 아니다. 리얼리티다.

리얼리티의 이름을 걸고서라도 이 사건은 '매우 사소한 사건'이다.

친절하게도 시사모 사이트에 내가 원했던 자료가 상당부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는 대부분 '인터뷰'로 채울 생각이다.

서면과 대면을 가리지 않고 괴롭힐 거라고 엄포를 놓고 오는 길이다.

사실 나는 등단도 안 했고,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미는 것이 아니라 명함 자체가 없다.

그래서 이 계획은 매우 아마추어적인 발상이다.

혹시 미래의 나의 글이 이 사건을 더럽힐 수도 있겠으나

명함도 되지 않는 미미한 먼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삼성을 포함한 자본에게 충고 한마디 하겠다.

자본과 상식의 관계이다.

자본은 상식을 이동시키지 않는다.

다만 자본은 상식에 의지해 돈을 번다.

만약 언론이 자본에 종속돼 있다는 말이 허락된다면,

당연히 자본도 상식에 종속돼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자본과 언론의 문제도 아니고,

그냥 상식의 문제도 아니다.

자본이 감히 상식에게 쿠데타를 감행한 사건이다.

상식이라는 놈은 시대마다 부침을 겪기 마련이지만,

불사의 생명을 지녔다. 자본보다 더 오래 살았다.

역사와 지역을 막론하고 자본은 상식에 빌붙어서 생명을 이어 왔다.

자본이여 이 말을 주의하라.

자본은 상식이 될 수 없다.

상식이 손을 들어주기 전까지는.

상식이 자본 당신의 편에 있는가.

당신이 상식을 제대로 키웠다고 생각하는가.

당신들이 키운 것은 '상식들'이었지 '상식'이 아니었다.

상식은 우리들에게 있다. 거대 자본이여.

아~ 빨리 글 쓰고 싶다...
친정오빠
  
2007-03-23 07:31:57 IP :  
안일님! 절대 안일하지 않아요. ㅎㅎㅎ
安逸   2007-03-23 23:30:36 IP :   
ㅋㅋ 친정오빠 님//지송합니다. 그 단어가 입에 붙었나 봅니다. 이름이 어디 가겠습니까~~
친정오빠님 저 스토커 아니걸랑요,, [3]
안녕하세요 롱롱이(한제석)입니다 [2]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이메일 : true@sisaj.com | 전화번호 02-3700-3200 | 정기구독 02-3700-3203 ~ 3206
주소 : 110-090 서울 종로구 교북동 11-1 부귀빌딩 6층 <시사IN> 편집국
정기구독 약정계좌 : 국민은행 533337-01-002330 (주)참언론
투자금 입금계좌 : 우리은행 1002-134-796096 유옥경
후원금 입금계좌 : 농협 100102-56-002472 유옥경시사기자단
Copyright(C) 2007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 All rights reserved.